제목 | 레이저로 수술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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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애항외과 |
작성일 | 2006-11-01 14:06:32 |
항문질환으로 수술을 요하는 환자에게 수술의 당위성을 열심히 설명한 후 으레 듣게 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해결해 줘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 참으로 답답한 점은 묻고 있는 환자가 가진 “레이저”에 대한 선입견 혹은 일종의 환상을 깨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대개의 사람들은 레이저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레이저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면서 수술에 상당한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듯하다. 이는 한 때 몇몇 의료기관에서 레이저로 수술하면 마치 커다란 장점이 있는 것으로, 심지어는 가장 최신의 그리고 최선의 치료방법인 것처럼 과대광고를 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무의식중에 각인을 시켜 지나친 기대감을 갖게 만든 때문일 것이다.
레이저(LASER)란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로 문자적으로는 방사의 유도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빛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레이저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산업 전반에서 폭 넓게 이용되고 있는데, 매질에 따라 루비(크롬), 알곤, NdYAG, Erbium YAG, 구리, 크립톤, 알렉산드라이트, 갈륨-알제나이드, CO2, He-Ne(헬륨네온) 등이 있고, 반도체도 레이저 매질로 이용된다. 이들 매질에 따른 레이저들은 의료용으로도 다양하게 이용되며, 크게는 점제거, 문신제거, 박피술 등에 이용되는 피부과용 레이저와 조직 절단이나 소작 등에 이용되는 외과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외과 특히 대장항문외과에서 주로 이용되는 레이저는 CO2 레이저와 다이오드레이저라고도 하는 반도체레이저이다. CO2 레이저는 조직절제용으로 사용되며, 다이오드레이저는 혈관응고용으로 사용된다.
레이저절제술의 원리는 순간에 가까운 극히 짧은 시간에 세포내의 수분을 기화시켜 조직을 파괴하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숯을 만들지 않고 태우는 것이다. 이 태워지는 범위가 조직 절개시 보통 사용하는 메스의 칼날에 의한 조직손상 범위보다 좁은 범위 이내이면 외과적으로 아주 훌륭한 레이저이겠는데, 불행하게도 아직은 메스보다 적게 조직손상을 주는 레이저는 없는 것 같다. 절제연으로부터의 조직손상의 범위를 적게 하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같은 CO2 레이저라 하더라도 조직손상의 범위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장비의 가격차이가 몇 배까지 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수술시 메스보다 조직손상의 범위가 큰데도 굳이 레이저를 이용하여 조직 절제를 하는 이유는 조직 절제시 절제연의 미세혈관을 동시에 응고시켜 출혈을 최소화하는 지혈효과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포경수술시 레이저가 흔하게 사용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항문수술의 경우, 치핵을 이루는 주요 조직이 레이저로 응고시키기에는 비교적 직경이 굵은 혈관들이기 때문에 치핵 절제를 위한 레이저의 적용은 적당하지 않다. 치루 같은 조직의 절제에는 외과의사의 레이저 선호도에 따라 가끔 쓰인다.
혈관응고에 이용되는 다이오드레이저는 우선 장비 가격이 매우 고가이다. 치핵수술의 경우 가끔 쓰이는데, 순전히 2도 이하의 내치핵만 있을 경우에 제한적으로 이용된다. 다이오드레이저의 파장은 특정색소에 민감하므로 인디고카민이라고 하는 색소제를 치핵병변부의 점막하부에 주사한 다음 이 부위에 다이오드레이저를 조사하면 점막조직에 대한 손상이 거의 없이 점막하부의 색소침착부위에 열에너지가 집중되어 주변부의 혈관을 응고시키게 되고 수일 후 치핵 덩어리는 위축되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효과면에서 외과적 절제술을 따라가기 힘들고, 적응증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대장항문외과 전문병원에서 그리 널리 사용되지는 않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환자들이 궁금해하고 또 최신수술방법으로 알면서 요구하는 레이저수술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경우는 위에서 말한 조직절제를 위한 CO2 레이저나 혈관응고용 다이오드레이저가 아니라 한 때 치질수술에 유행적으로 이용되었던 고주파 수술기를 레이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일부는 CO2 레이저를 이용하여 외래에서 국소적 외치핵 절제술 또는 췌피절제술을 하는 것을 최신 레이저수술이라고 광고하는 의료기관의 영향을 받아 레이저수술이라는 문구만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물론 적응증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는 하지만 드물게 다이오드레이저수술로 시행하는 진짜 레이저 치핵수술을 원하는 분들도 있다.
대부분의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들은 종류에 불문하고 치핵수술에 레이저를 적용하는데 보수적이다. 가장 좋은 치료적 수술 방법은 역시 근치적 절제술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료실에서 레이저수술을 문의하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레이저의 종류와 정체에 대해 설명하고, 효용성이 낮음에 대해 설득하는 것은 실로 어렵다. 이렇게 설득을 시도한 열에 아홉의 경우의 환자들은 레이저수술이 정확히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자기 자신이 모르면서도 “이 병원 의사는 최신 수술방법인 레이저수술을 할 줄 모르는구나.”라고 섣부르게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환자가 “레이저로 수술합니까?”라고 물어오면 무지를 깨우쳐 드려야겠다는 사명감보다는 짜증 섞인 절망감이 먼저 든다.
심지어는 항문주위 농양으로 당장 고름을 제거해야 하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도 “요즘은 레이저로 수술하면 간단하고 안아프다던데요!”라고 할 즈음이면 이 환자를 설득할 의지마저도 상실한다.
인터넷으로 거의 무한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금의 좋은 세상에서 검색창에 “레이저”만 써넣어 보아도 양질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으련만 언제쯤 일반 대중들이 갖고 있는 레이저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고 정확한 실체를 알려 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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